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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이 성공한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동안 정반대로 믿었습니다. 감정은 억누를수록 좋은 것이고, 이성이 앞서야 일이 된다고 생각했죠. 그 믿음이 얼마나 틀렸는지 깨달은 건, 번아웃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을 때였습니다. 정서지능(EQ)이 단순한 심리학 개념이 아니라 일과 관계, 그리고 행복의 실제 구조를 결정하는 요소라는 걸, 직접 부딪혀보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감정편향, 우리는 왜 나쁜 기억만 오래 붙들고 있을까
혹시 오늘 하루 칭찬 열 번을 들었는데, 비판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오랫동안 이게 제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 공통으로 가진 심리적 속성, 바로 감정편향(negativity bias) 때문입니다. 여기서 감정편향이란 긍정적 경험보다 부정적 경험에 훨씬 더 많은 심리적 무게를 부여하는 뇌의 기본 설정입니다. 쉽게 말해, 좋은 일은 당연하게 흘려보내고 나쁜 일은 과하게 붙잡아두는 방향으로 감정 회로가 기본 설정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신종호 교수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가 아홉 명이어도 나를 힘들게 하는 친구 한 명에게 에너지를 쏟는 것이 감정편향의 전형적인 작동 방식이라는 것이죠. 문제는 그 한 명과의 관계가 반드시 개선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 경험을 더해 보면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경우가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 에너지를 갈아 넣다가 오히려 나머지 아홉 명과의 관계를 망친 적이 있습니다.
감정편향을 교정하는 데 감사 일기가 자주 언급되는데, 처음에는 뻔하다고 느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만, 2주쯤 지속하고 나서 제가 당연하게 여기던 긍정적 경험들이 실제로 꽤 많았다는 걸 수치로 확인하게 됐습니다. 사소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 자체가 뇌의 주의(attention)를 긍정 자극 쪽으로 조금씩 재조정해 주는 효과가 있다는 점은 출처: 미국심리학회(APA)에서도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 긍정적 경험은 당연한 것으로 흘려보내고, 부정적 경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감정편향의 핵심 메커니즘입니다
- 회복 불가능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감정 에너지를 아끼는 현실적인 전략입니다
- 긍정 경험을 의식적으로 기록하고 연장하려는 행동이 감정편향을 교정하는 출발점입니다
정서조절, 억누르는 것과 다스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감정을 조절한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참는 것, 덮어두는 것을 떠올립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직장에서 화가 나도 꾹 눌러두고, 관계에서 억울함을 느껴도 없던 일처럼 넘어갔죠. 그 결과는 어땠냐면, 어느 날 아무 상관없는 작은 일에 폭발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갑자기 왜 저러냐는 표정이었지만, 갑자기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쌓인 것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었습니다.
정서조절(emotion regulation)이란 감정을 없애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는 정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수용한 뒤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여기서 수용이란 "그래, 나 지금 화가 났구나"를 인정하는 것이지, 화난 채로 물건을 집어던지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표현이란 상대방에게 일 중심의 언어로 내 감정 상태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I-message 방식입니다. "당신이 잘못했다"가 아니라 "저는 이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로 주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결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처음에는 어색하고 인위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상대방의 방어적인 반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억제(suppression)가 장기적으로 심리적 소진과 신체 건강 악화로 이어진다는 것은 출처: 미국국립보건원(NIH) PubMed에 등록된 다수의 종단 연구에서 일관되게 확인된 사실입니다. 억누르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은 장기적으로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손실을 만듭니다.
상사에게도 감정 표현이 가능합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감정 자체가 아니라 일의 맥락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불편합니다"는 조직 내 정서 표출 규범(display rules) 안에서 충분히 수용 가능한 표현입니다. 정서 표출 규범이란 사회나 조직이 암묵적으로 기대하는 감정 표현 방식의 범위를 말합니다. 이 범위 안에서 자신의 정서를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 억제보다 훨씬 건강한 선택입니다.
경청, 감정지능을 키우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어려운 기술
감정지능을 높이는 방법을 물어보면 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먼저 꺼냅니다. 경청입니다. 들으라는 말입니다. 뻔하게 들리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듣는 척하면서 사실은 반박할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한때 그랬으니까요.
정서지능이 낮은 상태의 경청은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그 말이 맞는지 틀린지, 충분히 고민한 건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꼰대 반응의 학문적 구조입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중심에 놓고 비판하는 것이죠. 반면 감정지능이 높은 경청은 상대방의 말 뒤에 있는 감정, 즉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정서를 경험하고 있는가를 먼저 파악하려 합니다.
공감(empathy)이란 상대의 감정 상태를 인지적으로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단순히 "그랬구나, 힘들었겠다"는 말을 반사적으로 붙이는 게 아닙니다. 상대의 정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맥락과 함께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대화를 나눠본 사람은 느낍니다. 경청을 잘하는 사람과 30분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느끼는 신뢰감과, 내 말을 평가하며 듣는 사람과 30분 이야기했을 때의 피로감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정서지능이 낮은지 높은지를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도 경청과 관련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지, 그 사람들이 슬슬 먼저 자리를 피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제가 한때 그런 신호를 받고도 "저 사람이 바쁜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지금 돌아보면 명확한 피드백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감정지능(EQ)은 타고나는 건가요, 후천적으로 키울 수 있나요?
A. 정서지능은 IQ와 달리 훈련과 경험을 통해 상당 부분 향상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름 붙이고, 적절히 표현하는 반복 연습이 핵심입니다. 선천적 기질이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일상의 의식적인 연습이 더 큰 변수입니다.
Q. 감정을 억누르는 게 나쁘다면, 직장에서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즉각적인 표출은 피하되, 없던 일로 묻어두는 억제도 좋지 않습니다. 감정이 가라앉은 뒤 I-message 방식으로, 즉 일의 맥락 안에서 "저는 이 상황이 불편했습니다"라고 전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 더 큰 형태로 터집니다.
Q. 감정편향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 뭔가요?
A. 가장 접근하기 쉬운 방법은 하루에 긍정적인 경험 1~3가지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커피 한 잔이 맛있었다, 동료가 도움을 줬다는 수준으로도 충분합니다. 뇌의 주의가 부정 자극에 과하게 쏠리는 것을 의식적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핵심 원리입니다.
Q. 내 감정지능이 낮은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A.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패턴을 관찰하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대화가 점점 짧아지거나, 먼저 자리를 피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신호입니다. 또한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반박 포인트를 먼저 찾고 있다면, 공감보다 평가가 앞서고 있다는 뜻입니다.
결론
감정지능이라는 개념이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살로베이와 마이어(Salovey & Mayer)의 연구를 기점으로 합니다. 이후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이 이를 경영과 리더십에 적용하면서 일반에 널리 알려졌죠.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개념이 계속 인용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제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감정편향을 인식하고, 정서조절을 억압 대신 표현으로 바꾸고, 경청을 평가보다 이해로 바꾸는 것. 결국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저도 아직 매일 잘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는 감정을 참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은 시작이라는 걸 압니다.
어쩌면 정서지능은 완벽하게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하려는 태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https://youtu.be/4XX_bBlefsI?si=mcmMhEUlfsMAAsM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