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요즘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일만 하다가 침대에 누울 즈음이면, 몸보다 머리가 먼저 무너집니다.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햇빛을 제대로 본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한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피로는 온몸에 켜켜이 쌓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체력이 약해진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했습니다. 몸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도 왜 이렇게 지치는 걸까. 그러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체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요. 우리의 몸뿐 아니라 마음 역시 오랜 시간 동안 특정한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진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적응해온 환경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에서 발견한 것, 그리고 우리 마음에서 발견한 것
다윈은 원래 한량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금수저 집안 출신으로, 의대도 중간에 그만뒀고 신학 학위를 받은 것이 정규 교육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그가 1831년 영국 해군 소속 비글호(HMS Beagle)에 박물학자로 승선한 것은, 여러 사람이 거절한 자리가 돌고 돌아 그에게 온 덕분이었습니다. 박물학자란 당시 자연에서 다양한 생물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자연을 관찰하고 분류하는 현장 연구자에 가까웠습니다.
5년에 걸친 항해에서 다윈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은 남미 대륙 끝을 지나 도착한 갈라파고스 제도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핀치(finch)라는 새를 여러 섬에서 관찰했는데, 섬마다 부리 모양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처음엔 아예 다른 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으로 돌아와 해부하고 분석해 보니 모두 같은 핀치였습니다. 각 섬의 먹이 환경에 맞게 부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관찰이 씨앗이 되어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출판합니다. 귀국 후 무려 23년을 더 기다린 셈입니다. 성경 창세기 전체를 뒤집는 이론이었으니, 다윈이 얼마나 오래 망설였는지는 짐작이 됩니다. 독실한 신자였던 아내조차 이 이론을 듣고 분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에서 흥미롭게 본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다윈이 '진화(evolution)'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사실입니다. 대신 그는 수정을 통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여기서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진화에는 '더 좋아진다'거나 '방향이 있다'는 뉘앙스가 없다는 점을 다윈 본인이 가장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진화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환경에 맞는 형태가 살아남는 과정입니다. 나중에 이 단어를 후회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출처: 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저는 여기서 마음 이야기로 넘어가고 싶습니다. 진화론을 마음에 적용하는 것이 어색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이것이 현대인의 정신 건강을 이해하는 데 가장 솔직한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뇌와 감정 역시 갈라파고스 핀치의 부리처럼, 오랜 시간 특정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어 왔습니다. 불안은 오류가 아니라 위험을 감지하는 생존 시스템이고, 외로움은 기분 나쁜 감정이 아니라 관계 단절을 알리는 경보 신호입니다. 피로 역시 "이제 그만"이라는 몸의 언어입니다.
- 불안(anxiety): 위험 자극에 대비하도록 설계된 오래된 생존 회로
- 외로움(loneliness): 사회적 연결의 단절을 알리는 신호로, 공복감과 유사한 경보 기능
- 피로(fatigue): 에너지 소진을 알려 무리를 막는 조절 신호
- 분노(anger): 중요한 가치나 경계가 침해되었다는 정보를 담은 반응
제가 직접 경험한 것도 비슷했습니다. 이유 없이 불안하고 예민해진다 싶을 때를 돌아보면, 예외 없이 며칠째 햇빛도 못 보고 걷지도 않고 사람도 제대로 못 만난 날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마음이 고장 난 게 아니라, 마음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환경이 없었던 것입니다.
진화적 불일치, 현대인의 마음이 지치는 진짜 이유
진화적 불일치(evolutionary mismatch)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진화적 불일치란, 우리의 몸과 뇌가 적응해온 환경과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환경 사이의 간격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석기시대의 뇌로 스마트폰 시대를 살고 있는 상태입니다.
인류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환경은 지금과 전혀 달랐습니다. 하루 종일 걷고, 햇빛을 받고, 소규모 집단 안에서 얼굴을 보며 살았습니다. 정보는 생존에 직결된 것만 처리했고, 위협은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형태였습니다. 우리의 뇌는 그 환경에 맞게 설계되어 있습니다(출처: NIH, 자연 환경과 정신 건강 연구).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하루에 평균 8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 있고, 화면에서 쏟아지는 알림을 끊임없이 처리하며, SNS에서 수백 명의 삶과 본인의 삶을 비교합니다. 실제로 겪는 위협은 줄었지만 뇌는 그 위협을 실제처럼 처리합니다. 수렵채집 시절에는 포식자를 피하고 나면 불안이 가라앉았겠지만, 지금의 불안은 다음 알림과 함께 새로 생성됩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도 여기서 중요해집니다. 메타인지란 자기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는 능력, 즉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를 아는 능력입니다.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인지적 여유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알림과 정보가 쉴 새 없이 들어오면 그 공간이 사라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생각이 많아서 힘든 것이 아니라, 생각이 많은 줄도 모를 만큼 자극에 묻혀 있을 때가 더 힘들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조율(attunement)'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조율이란 자신의 몸과 감정, 주변 환경, 타인의 상태를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능력입니다. 악기를 조율하듯 자신의 내부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가깝습니다. 자연환경에서는 이 조율이 자연스럽게 일어났겠지만, 지금은 의도하지 않으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신 건강 문제는 마음의 문제, 즉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저는 그 시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 경험으로 봤을 때 절반도 안 맞습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었고, 너무 오래 혼자였고, 너무 오래 움직이지 않은 것이 먼저였던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까'보다 '지금 내 몸은 어떤 환경에 있는가'를 먼저 물어봤더라면 달라졌을 날들이 있었습니다.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낸 우리의 뇌와 몸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설계 원칙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자연선택이란 특정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형질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우리의 뇌와 몸이 신체 활동, 빛, 사회적 상호적용에 반응하는 특성을 갖게 된 것도 오랜 진화과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을 거스르려면 의지가 필요하지만, 맞춰주면 의지가 훨씬 덜 듭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진화적 불일치가 정신 건강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나요?
A. 진화적 불일치를 단순히 이론으로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실제 연구 결과는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규칙적인 신체 활동이 우울 증상을 줄인다는 연구는 수십 년째 반복 확인되고 있고, 자연 환경 노출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낮춘다는 연구도 누적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화 심리학이 주목하는 핵심 증거입니다.
Q. 불안을 생존 신호로 보면 치료를 안 해도 된다는 건가요?
A. 이 부분에 오해가 생길 수 있는데, 불안을 신호로 이해하는 것과 방치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 끄기만 하면 안 되듯, 신호의 원인을 살펴야 합니다. 일상적인 불안은 환경 조절로 완화될 수 있지만, 지속적이고 심각한 불안 장애는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Q. 다윈의 진화론이 우생학에 악용됐다는 얘기가 있던데, 마음 건강에도 이런 오용이 생길 수 있나요?
A. 다윈 본인도 이 점을 우려했습니다. 자연선택을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식으로 좁게 해석하면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마음 건강에 진화 관점을 적용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응 못 하면 도태된다'는 식의 해석은 경계해야 합니다. 핵심은 우열이 아니라 환경과의 적합성이고, 그 환경을 개인이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
Q. 메타인지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거창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해보니 가장 효과적인 건 하루 5분 감정 일기였습니다.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를 문장으로 적다 보면 생각을 생각하는 거리감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명상, 마음챙김(mindfulness) 수련도 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결론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에서 다윈은 이렇게 썼습니다.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숨결이 불어넣어진 생명이, 그토록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저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과학자의 글이라기보다 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장엄함 안에는 우리의 마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 피로와 분노는 때로 없애야 할 결함처럼 느껴지지만, 어쩌면 그것들은 오랜 시간 살아남기 위해 우리 안에 남겨진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마음이 힘들 때마다 무조건 나 자신을 고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 걷고, 햇빛을 받고, 화면에서 눈을 떼고,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 겉보기에는 너무나 지극히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작은 행위들이야말로, 수백만 년 동안 우리 뇌와 몸이 갈구해 왔으며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인간다운 삶의 원초적 조건'일지도 모릅니다.
※ 안내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심리학·뇌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한 정보 제공 목적의 콘텐츠입니다. 전문적인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으며, 증상이 지속되거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면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담하시기를 권합니다.
EQ충전소 비타라움
감정은 참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입니다.
뇌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삶에 생기를 더하는 콘텐츠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