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진첩을 열어보면 수백 장의 스크린샷이 쌓여 있습니다. 분명 그때는 ‘이건 꼭 기억해둬야겠다’ 싶어서 캡처했을 겁니다. 좋은 문장, 유용한 정보, 나중에 읽어보고 싶은 글까지 열심히 저장해 둡니다. 그런데 며칠이나 몇 달이 지나 다시 사진첩을 열어보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이걸 내가 왜 저장했지?’ 분명 내가 직접 캡처한 사진인데, 정작 그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이걸 단순히 기억력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한 번 읽은 내용도 제법 기억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내용을 발견하면 더 열심히 저장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보면..
어느 순간부터 “요즘 기대되는 게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나름대로 해내고 있었고, 딱히 불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루하루가 조금 밋밋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기다려지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루를 살아갈 이유는 충분했지만, 내일을 기다릴 이유는 부족했던 것입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만드는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요. 뇌는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따라 지금의 주의와 행동을 조절합니다. 좋은 일을 기대하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설렘과 동기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생각해보면 여행도 그렇습..
저는 꽤 오랫동안 거절을 어려워했습니다. 부탁을 받으면 어떻게든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안 돼요”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상대가 서운해하면 어떡하지, 괜히 관계가 어색해지면 어떡하지, 다음부터 나를 다르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사실 제가 두려웠던 건 거절 그 자체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거절한 뒤에 따라올 관계의 변화와 불편함이 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는 부탁에도 쉽게 “네”라고 말했고, 이미 일정이 있는데도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했습니다. 거절하고 나면 상대의 표정을 계속 떠올리며 “내가 너무 매정했나?” 하고 다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나는 하기 싫은 일을 거절하는 것보다, 거절한 뒤 상대가 나를..
마음속으로는 “저 사람 정말 잘하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적, 저도 꽤 있었습니다. 어색할까 봐, 아첨처럼 들릴까 봐, 별것 아닌데 굳이 말해야 하나 싶어서요. 그런데 막상 칭찬을 건네고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은 칭찬을 훨씬 반갑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부터는 좋은 점이 보이면 조금 더 자주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게 됐습니다. 칭찬은 많이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잘했어”라는 한마디보다, 무엇이 좋았는지 정확하게 짚어주는 말이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잘했어" 한마디가 왜 금방 잊힐까요 — 구체적 칭찬의 힘칭찬을 했는데도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칭찬의 내용이 너무 막연한 건 아..
요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화제입니다. 저는 원래 놀란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시간과 기억, 선택과 후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주제를 거대한 이야기 속에 담아내는 방식이 늘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바탕으로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습니다. 영화를 계기로 오랜만에 원작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10년 동안 전쟁을 치렀고, 다시 10년 동안 바다를 떠돌았습니다. 괴물을 만나고, 신들의 분노를 사고, 수많은 유혹을 지나 마침내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이 이야기가 단순한 영웅의 모험담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
저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습니다. 특히 20대에는 더 그랬습니다. ‘현재를 붙잡아라’는 이 말이 좋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보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가고, 마음이 움직이면 일단 움직여보는 삶.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는 말이 왠지 멋있었습니다. 지금도 좋아합니다. 다만 이제는 그 의미를 조금 다르게 이해합니다. 예전에는 카르페 디엠을 ‘오늘을 마음껏 즐기자’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삶을 놓치지 말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순간을 계속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내일 할 일을 생각하고,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책을 읽으면서 어제 있었던 일..
미술관에서 발걸음이 멈추는 경험, 한 번쯤 있으셨을 겁니다. 저도 미술관에 가면 가끔 그런 순간을 만납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은 것도, 유명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춥니다.왜 멈췄을까 생각하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예술은 우리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일까?먹고사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결국 시간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에 불과한 걸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발걸음을 멈춥니다. 음악을 듣다가 이유 없이 울기도 하고, 어떤 풍경 앞에서는 한참 동안 바라보기도 합니다.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마음..
예전에 회사에서 상사와 면담을 하던 중, 업무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꺼낸 이야기였습니다. 그동안 제 의견을 잘 들어주셨고, 저 역시 회사에서 신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그게 고객의 문제인지, 당신의 문제인지 한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야기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문제의 원인일 수도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사가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상황을 잘못 보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날 이후 제 판단을 계속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일 이후부터 회의에서 예전처럼 쉽게 말할 수..
요즘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일만 하다가 침대에 누울 즈음이면, 몸보다 머리가 먼저 무너집니다.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햇빛을 제대로 본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한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피로는 온몸에 켜켜이 쌓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체력이 약해진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했습니다. 몸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도 왜 이렇게 지치는 걸까. 그러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체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요. 우리의 몸뿐 아니라 마음 역시 오랜 시간 동안 특정한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진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적응해온 환경 사이에..
삶에 만족한다면 다른 곳을 동경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지금의 삶이 충분하다면 굳이 낯선 곳을 꿈꿀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습니다. 화면 속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때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잠시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삶을 살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그 마음을 불만족의 증거처럼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