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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습니다. 특히 20대에는 더 그랬습니다. ‘현재를 붙잡아라’는 이 말이 좋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보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가고, 마음이 움직이면 일단 움직여보는 삶.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는 말이 왠지 멋있었습니다. 지금도 좋아합니다. 다만 이제는 그 의미를 조금 다르게 이해합니다. 예전에는 카르페 디엠을 ‘오늘을 마음껏 즐기자’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삶을 놓치지 말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순간을 계속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내일 할 일을 생각하고,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책을 읽으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몸은 현재에 있는데 마음은 늘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지금 이 순간에는 제대로 존재하지 않고 있었구나. 마치 음악은 흐르고 있는데 정작 그 리듬에 몸을 맡기지 못하고, 다음 스텝만 계산하고 있는 사람처럼요.
순간 집중 — 카르페 디엠의 진짜 의미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하면서 딴생각을 하는 게 얼마나 일상적인 일인지 새삼 놀랐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내일 회의를 걱정하고, 친구와 대화하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책을 읽으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곱씹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지금 이 순간에는 한 번도 제대로 있지 않았던 거죠.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마음 방랑(Mind Wandering)이라고 부릅니다. 마음 방랑이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무관한 생각이 의식을 점령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깨어 있는 시간의 약 47%를 지금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생각에 쓰고 있으며, 그 상태에서는 현재 과제에 집중할 때보다 행복감이 유의미하게 낮다고 합니다(출처: Harvard University, Killingsworth & Gilbert, 2010).
저도 비슷했습니다. 집중해서 글을 쓰거나 누군가와 깊이 이야기를 나눈 날에는 하루가 꽤 충실하게 지나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대로 이것저것 하느라 여러 탭을 열어놓고, 휴대폰을 들여다봤다가 다시 일을 하고, 또 다른 생각을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났을 때 이상하게 허전했습니다. 분명 바쁘게 보냈는데, 무엇을 했는지는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똑같이 흘렀는데, 그 시간을 얼마나 제대로 경험했느냐에 따라 하루의 밀도가 달랐던 겁니다.
가끔은 아주 단순한 순간에서 그 차이를 느낍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커피를 마시면서도 휴대폰을 보고,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그냥 커피를 마셔봤습니다. 커피 향을 느끼고, 따뜻한 잔을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그 시간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현재를 산다는 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순간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앞에 와 있는 평범한 순간을 제대로 경험하는 것.
좋은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을 듣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그 맛을 느끼고,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는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났다는 걸 알아차리면 다시 지금으로 돌아오는 것.
어쩌면 카르페 디엠은 오늘 하루를 신나게 보내라는 말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삶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는 말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여기서 마인드풀니스란 지금 이 순간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능력입니다. 거창한 명상이 아니어도 됩니다. 밥 먹을 때 밥 먹는 것에 집중하고, 걸을 때 발바닥의 감각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카르페 디엠은 순간의 쾌락이 아니라 순간에 완전히 집중하는 태도입니다
- 마음 방랑 상태에서는 행복감이 실제로 낮아진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 지금 하는 일 하나에 온전히 있는 것만으로 하루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 마인드풀니스는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훈련할 수 있습니다
통제와 수용 — 춤추는 삶을 배우기까지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데, 한동안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 통제하려 했다는 겁니다. 상대방의 반응, 이미 일어난 일,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게임이었는데, 당시에는 그게 의지의 문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이것을 디코토미 오브 컨트롤(Dichotomy of Control), 즉 통제 이분법이라고 부릅니다. 통제 이분법이란 세상의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는 사고방식입니다. 내 생각, 내 노력, 내 태도는 내 영역입니다. 반면 타인의 마음, 결과, 이미 지나간 시간은 내 영역 밖입니다. 저는 이 구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제로는 내 영역 밖의 것들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이 마지막에 타임 트래블을 포기하는 장면이 제게는 꽤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다른 가능성을 선택하면 거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두 가지 다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그가 결국 선택한 건, 지금 이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직접 겪어보니, '그때 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은 현재를 정말 무력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어느 시점을 선택해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삶은 통제보다 춤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모든 스텝을 결정할 수 없고, 음악이 언제 바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움직일 수 있는 순간에 움직이지 않으면 춤은 멈춥니다. 반대로 상대가 움직일 때 그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서로 발을 밟게 됩니다. 제 경우엔 말해야 할 때 입을 닫고, 시작해야 할 때 머뭇거리면서 정작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패턴이 꽤 오래 반복됐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는 위험을 알면서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정직한 말을 건네고 필요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야말로 카르페 디엠을 삶에서 실천하는 가장 솔직한 형태입니다. 나의 행동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그로 인해 생겨날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입니다. 이 둘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제 안에는 예상치 못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통제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결코 포기나 방관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에 100%의 몰입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가장 강력한 태도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카르페 디엠이랑 그냥 충동적으로 사는 것이랑 다른 건가요?
A. 제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이 둘은 완전히 반대 지점에 서 있습니다. 충동적으로 산다는 것은 장기적인 결과나 책임감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오직 현재 순간에 튀어나오는 쾌락과 욕구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삶입니다. 반면에 진정한 의미의 카르페 디엠은 현재 내가 담당해야 할 역할과 과제에 온전한 의식으로 집중하는 능동적인 태도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는 딴생각 없이 공부에 몰입하고, 누군가와 대화할 때는 휴대폰을 치우고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진짜 카르페 디엠의 실천입니다..
Q. 통제할 수 없는 걸 내려놓으라는데 그게 실제로 가능한가요?
A. 솔직히 말씀드리면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에는 저 역시 처음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의 '통제 이분법'을 하나의 유용한 도구로 활용해 보세요.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걱정하는 이 요소가 내 통제 범위 안에 있는가, 아니면 밖에 있는가?" 단지 이 질문을 던져 내 영역 밖이라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과부하가 크게 줄어듭니다. 내 영역이 아닌 것에 쏟던 무의미한 에너지를 거두어들여, 내가 당장 바꿀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로 돌리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점차 자연스러워집니다.
Q. 마인드풀니스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A.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하루에 딱 한 끼, 밥 먹는 동안만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부터 했습니다. 거창한 명상 앱이나 특별한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지금 하는 행동에 감각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하면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Q. 어바웃 타임 영화가 카르페 디엠이랑 어떤 연관이 있나요?
A. 주인공이 타임 트래블 능력을 포기하고 나서 내린 결론이 결국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있는 것"입니다. 다른 가능성을 쫓을수록 지금 눈앞의 것을 놓친다는 점에서, 영화의 결말이 카르페 디엠의 실천적 의미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카르페 디엠은 오늘을 신나게 보내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과 일과 감각을 제대로 경험하는 것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 결과까지 모두 내 뜻대로 만들려고 하기보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곳에서는 용기 있게 움직이고 나머지는 흘려보내는 것.
저는 이제 삶을 완벽하게 통제하려 하기보다, 흘러가는 음악에 맞춰 춤추듯 살아가고 싶습니다. 어떤 음악이 다음에 나올지는 알 수 없고, 상대가 어떤 스텝을 밟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발걸음을 내디딜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카르페 디엠은 결국 그런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를 완벽하게 준비하느라 지금을 놓치지 말 것. 지나간 순간을 붙잡느라 지금의 삶을 흘려보내지 말 것.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한 걸음을 제대로 내디딜 것.
삶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늘의 이 순간만큼은, 조금 더 제대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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