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먼 곳을 향한 동경 (펀베, 동경, 떠나고 싶은 마음)

비타라움 vitaraum 2026. 8. 10. 22:11

목차


    펀베 Fernweh

    삶에 만족한다면 다른 곳을 동경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지금의 삶이 충분하다면 굳이 낯선 곳을 꿈꿀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습니다. 화면 속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때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잠시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삶을 살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그 마음을 불만족의 증거처럼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이 감정은 지금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의 감각에 끌리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펀베(Fernweh) — 먼 곳을 동경하는 마음의 정체

    독일어에 Heimweh(하임베)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임베란 낯선 곳에 있을 때 집과 고향이 당기는 향수(鄕愁), 즉 향수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정반대에 놓인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Fernweh(펀베)입니다. 쉽게 말해, 아직 가보지 못한 먼 곳을 막연하게 동경하는 감정입니다.

    저도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이게 나였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차가 플랫폼을 떠나는 장면을 보면 이유 없이 눈이 따라가고, 낯선 도시의 골목 사진 한 장에 한참을 멈추게 됩니다. 그 감각이 단순한 여행 충동과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펀베라는 단어가 비로소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펀베는 "도망치는 것 이상이고, 실현하는 것보다 덜한 것"이라는 표현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 짐을 싸겠다는 결심도 아니고,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도 아닙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다른 가능성의 문을 살짝 열어보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이 감정은 왜 생기는 걸까요. 불교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고정된 실체 없이 흘러간다고 봅니다. 나라는 존재는 기억의 집합체이고, 타인의 인정 위에 세워진 허상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삶만이 나의 전부"라는 확신이 흔들리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출처: ScienceDirect — Fernweh 관련 심리 연구)

    • Heimweh(하임베): 집·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
    • Fernweh(펀베): 아직 가보지 않은 먼 곳을 향한 막연한 동경
    • 두 감정은 반대 방향을 가리키지만, 둘 다 '지금 여기'를 기반으로 생겨납니다
    요약: 펀베는 단순한 여행 욕구가 아니라, 살아보지 않은 삶의 가능성을 잠시 열어보는 감정입니다.

     

    동경의 대상은 장소가 아니라 감정이었다

    저는 왜 자꾸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지 오랫동안 생각해 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아무 계획 없이 비행기표 한 장을 끊고, 익숙한 사람들과 일, 해야 할 일들에서 잠시 멀어져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가 낯선 도시의 골목과 시장, 오래된 건물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런 마음은 더 커집니다. 화면 속 사람들을 따라 걷다 보면 나도 저곳에 가서 며칠이든, 몇 달이든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니 제가 동경했던 것은 특정한 장소만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설렘,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자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나로 살아보는 경험. 해야 할 일과 맡고 있는 역할에서 잠시 내려와 오롯이 내 감각에 집중하는 시간. 어쩌면 저는 먼 곳 자체보다 그곳에서 경험하게 될 것 같은 감정과 삶의 방식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디로 떠나고 싶은가?’만 묻지 않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떠나고 싶은가?’, ‘그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싶은가?’를 함께 생각해 봅니다. 때로는 정말 휴식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자극과 모험이 필요해서일 수도 있고, 지금의 삶에서 너무 오래 맡아온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지금의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그 마음을 무조건 낭만적인 것으로 포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때로는 정말 지쳐서 떠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억누르거나 성급하게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새로운 장소인지, 휴식인지, 자유인지, 변화인지, 아니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는 경험인지.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떠나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이 내가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려주는 조금 더 구체적인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투사적 동경(projective longing)'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투사적 동경이란 특정 장소나 상황에 내가 원하는 감정을 덧씌워 그리워하는 심리 기제를 말합니다. 바다가 그립다고 느낄 때 실제로는 자유가 그리운 것일 수 있고, 낯선 도시가 당길 때 원하는 건 그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감각일 수 있습니다.

    요약: 동경의 대상은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에서 느끼리라 상상하는 감정이며, 이를 알면 결핍이 아닌 단서로 바뀝니다.

     

    떠나고 싶은 마음에도 이유가 있다

    한동안 저는 동경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없애려고 했습니다. 현재에 감사해야 한다, 이미 가진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그 감정을 억누를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의 불안정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구성하는 것은 결국 기억과 타인의 인정이라는 두 가지입니다. 여기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개념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행무상이란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 없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불교 사상의 핵심 명제입니다. 나라는 존재도 예외가 아니고, 따라서 지금의 삶이 유일한 정답일 이유도 없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다른 삶을 상상하는 것이 현재에 대한 배신이 아닙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의 삶만 상상하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살아보지 않은 삶을 머릿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상상력(imagination)입니다. 쉽게 말해, 상상력은 내 안에 아직 다른 가능성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동경하는 마음이 찾아오면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려고 온 거니?" 낯선 도시가 동경된다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면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 답을 찾는 것만으로도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삶에 조금 다른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동경이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의 삶을 외면하기 위한 도피처가 될 수도 있고, 실제 삶보다 머릿속의 다른 삶을 이상화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동경하는 마음을 반드시 실현해야 할 목표로 만들 필요도, 반대로 억지로 지워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요약: 동경하는 마음을 없애거나 실현해야 할 목표로 만들지 않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묻는 신호로 두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펀베(Fernweh)와 단순한 여행 충동은 어떻게 다른가요?

    A. 여행 충동은 특정 장소에 가고 싶다는 구체적인 욕구에 가깝습니다. 반면 펀베는 아직 가보지도 않은, 어쩌면 평생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곳을 막연하게 동경하는 감정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펀베가 일어날 때는 장소보다 그 장소에서 느낄 것 같은 감정, 즉 여유나 자유 같은 것이 당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Q. 늘 다른 삶을 상상하면 지금 삶에 만족을 못 하는 건가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살아보지 않은 삶을 상상하는 것은 상상력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지, 현재에 대한 불만의 증거가 아닙니다. 제 경험상, 다른 삶을 잠깐 상상하고 나면 오히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Q. 동경이 생길 때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A.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 "이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려는 걸까?"라고 먼저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조용한 마을이 가고 싶다면 느린 삶의 감각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고, 낯선 도시가 당긴다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동경을 무조건 실현해야 할 목표로 만들거나, 반대로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으로 단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향하고 있는 곳보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싶은지를 보면,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구체적인 신호로 바뀔 수 있습니다.

     

    Q. 제행무상이 동경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A. 제행무상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불교의 핵심 통찰로, 나라는 존재 역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삶이 유일한 정답일 이유가 없고, 다른 삶을 상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의 흐름입니다. 동경하는 마음을 거부하기보다 수용하는 태도가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결론

    저는 앞으로도 아마 먼 곳을 동경하는 순간이 자주 있을 것 같습니다.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낯선 도시의 골목과 시장, 오래된 집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면 문득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집니다. 화면 속 풍경을 바라보다가 잠시 그곳에서 살아가는 나를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마음을 보고 "내 삶이 잘못됐나?"라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나는 저곳에서 무엇을 원하는 걸까?"라고 먼저 물어봅니다.


    동경은 반드시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이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내가 새로운 것에 끌리고, 낯선 풍경을 좋아하고,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서일 수 있습니다. 펀베를 없애려 하거나 반드시 현실로 만들어야 할 목표로 생각하기보다, 그 마음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꼭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지금의 삶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 낯선 동네를 걸어볼 수도 있고, 가보고 싶었던 나라의 여행 계획을 세워볼 수도 있습니다. 느린 삶이 부럽다면 하루쯤 천천히 살아보고, 새로운 세계가 궁금하다면 낯선 책이나 영화를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꼭 비행기표를 끊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동경하는 삶의 한 조각을 지금의 삶에 조금 가져와 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떠나고 싶은 마음은 지금의 삶을 버리라는 신호가 아니라, 삶에 조금 더 많은 세계를 넣어보라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EQ충전소 비타라움

    감정은 참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입니다.

    뇌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삶에 생기를 더하는 콘텐츠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