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진첩을 열어보면 수백 장의 스크린샷이 쌓여 있습니다. 분명 그때는 ‘이건 꼭 기억해둬야겠다’ 싶어서 캡처했을 겁니다. 좋은 문장, 유용한 정보, 나중에 읽어보고 싶은 글까지 열심히 저장해 둡니다. 그런데 며칠이나 몇 달이 지나 다시 사진첩을 열어보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이걸 내가 왜 저장했지?’ 분명 내가 직접 캡처한 사진인데, 정작 그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이걸 단순히 기억력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한 번 읽은 내용도 제법 기억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내용을 발견하면 더 열심히 저장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보면..
어느 순간부터 “요즘 기대되는 게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나름대로 해내고 있었고, 딱히 불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루하루가 조금 밋밋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기다려지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루를 살아갈 이유는 충분했지만, 내일을 기다릴 이유는 부족했던 것입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만드는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요. 뇌는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따라 지금의 주의와 행동을 조절합니다. 좋은 일을 기대하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설렘과 동기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생각해보면 여행도 그렇습..
미술관에서 발걸음이 멈추는 경험, 한 번쯤 있으셨을 겁니다. 저도 미술관에 가면 가끔 그런 순간을 만납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은 것도, 유명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춥니다.왜 멈췄을까 생각하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예술은 우리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일까?먹고사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결국 시간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에 불과한 걸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발걸음을 멈춥니다. 음악을 듣다가 이유 없이 울기도 하고, 어떤 풍경 앞에서는 한참 동안 바라보기도 합니다.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마음..
저는 원래 언어를 좋아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는 영어와 중국어를 실제 업무에서 자주 사용했고, 사람들과 언어로 소통하는 일이 자연스럽고 즐거웠습니다. 지금도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고, 스페인어도 가끔 들여다봅니다.그래서 저에게 외국어는 단순히 시험을 위한 공부나 스펙을 쌓기 위한 도구는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고, 다른 언어를 통해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만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뇌과학과 인지과학에 관한 연구들을 찾아보면서 외국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언어를 배우는 일이 단순히 ‘잘 말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뇌를 계속 낯선 환경에 노출시키는 꽤 강력한 인지 훈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헬스장은 열심히 ..
사람은 흔히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인지심리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우리가 믿는 것만큼 이성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매 순간 모든 정보를 꼼꼼히 분석하기보다, 가능한 한 적은 인지 자원으로 빠르게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저도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는 쉽게 믿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제가 내렸던 크고 작은 결정들을 돌아보니, 많은 판단이 깊은 사고보다 익숙한 패턴과 직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우리는 정말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여기서 '인지'란 사람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모든 정신 과정을 의미합니다. 인지심리학은 우리가 어떻게 생..
마트에서 할인 행사 상품을 무심코 집어 들다가 문득 '내가 이걸 정말 필요로 했나?' 하는 생각이 든 적 있으신가요? 저도 얼마 전 그랬습니다. 장바구니에 담고 나서야 원래 살 계획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죠. 알고 보니 이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뇌는 원래 불확실함을 견디기 어려워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지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이 밝혀낸 선택의 함정은, 생각보다 훨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었습니다.가짜 확실성이 선택을 망치는 이유몇 달 전 동네 타이어 전문점 앞을 지나다가 이런 문구를 봤습니다. "타이어 3개 사면 1개 공짜." 솔직히 이상했습니다. 타이어는 보통 2개 또는 4개씩 교환하는데, 3개를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따져보면 "4개 구입 시 25% 할..
저는 오랫동안 '상상력'이 성공의 열쇠라고 믿었습니다. 원하는 미래를 머릿속으로 선명하게 그리면 결국 현실도 바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상상해도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움직인 순간들은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 즉 '놀라움'이 찾아왔을 때였습니다.상상하는 것과 진짜로 놀라는 것은 전혀 다른 뇌의 작용이었고, 저는 그 둘을 수십 년 동안 혼동하고 있었습니다.발견과 신념: '새롭다'와 '놀랍다'는 다르다일반적으로 놀라움과 신기함은 같은 감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이 두 가지를 구분해보려 했을 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알았습니다. 신기하다는 건 뇌의 해마(hippocampus)가 일화 기억(episodic memo..
한국은 학업성취도 세계 3위이면서 흥미도는 31위, 동기부여는 38위입니다.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멍했습니다. 열심히 하는데 왜 즐겁지 않은지, 집중하고 싶은데 왜 안 되는지 — 그 이유가 이 숫자 하나에 다 담겨 있었습니다. 몰입이 안 되는 건 의지 문제가 아니라, 내면 상태의 문제였습니다.감정조절력 — 억누르는 게 아니라 바꾸는 것몰입(Flow)에 관한 연구를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제일 먼저 무너지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능력과 난이도가 맞아야 몰입된다"는 공식입니다. 시카고 대학교 연구진이 정의한 몰입의 핵심 조건이기도 한데,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 너무 많았습니다.제가 실제로 경험해 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과제 난이도와 실력이 딱 맞는 날인데도 몸이 피곤하거나 머릿..
불안한 순간일수록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발표 전날 밤새 자료를 고치고, 문제가 터지면 무조건 먼저 반응했습니다. 그런데 뇌과학 연구들을 접하면서 그 믿음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불안할수록 먼저 멈춰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멈춤이 단순한 소극성이 아니라 뇌의 작동 원리에 근거한 전략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멈춤의 기술 — 편도체가 켜지면 판단력이 꺼진다일반적으로 빠른 반응이 유능함의 증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불안한 상태에서 가장 빠르게 내린 결정이 가장 자주 후회할 결정이었습니다.이유가 있습니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편도체(amygdala)는 생존과 관련된 위협 신호를 감지하는 뇌 부위입니다. 여기서 편도체란 측두엽 안쪽에 ..
화를 8분만 내도 혈관 기능이 손상되고, 그 상태가 40분 넘게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무서웠습니다. 저도 운전하다 끼어드는 차 만나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 8분이 제 일상에서 꽤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게 현실로 느껴졌거든요.편도체 납치 — 화가 나면 뇌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화가 나는 순간, 뇌는 이성보다 먼저 편도체(Amygdala)를 작동시킵니다. 편도체란 뇌에서 감정 정보를 가장 먼저 처리하는 부위로, 위협을 감지하면 반사적으로 활성화됩니다. 이 상태를 뇌과학에서는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감정 회로가 이성 회로를 덮어버리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화가 났을 때 "말리지 마"가 되는 게 의지..